
뭔가 이상하다 싶던 그날
가게를 인수할 때 에어컨도 같이 넘겨받았어요. "쓸 만하다"는 이전 사장님 말만 믿고 그냥 넘어갔는데, 여름 들어서면서 슬슬 이상한 낌새가 보이더라고요. 리모컨으로 온도를 아무리 낮춰도 실내가 후텁지근했거든요. 처음엔 그냥 날이 더워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손님 발길도 뜸한 시간이라 매장에 자주 붙어있지 못했던 것도 한몫했고요.
그러다 하루는 오후 늦게 매장에 들렀는데, 진열대 위 초콜릿이 다 녹아서 포장지 안에서 흘러내리고 있더라고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어요. 손으로 만져보니 실내가 찜통 수준이었고, 에어컨은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나오는 바람이 미지근한 게 아니라 아예 더운 바람이었습니다. 그제야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알았죠.
옆 가게 사장님의 전화
더 놀랐던 건 그날 저녁, 옆 가게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거기 매장 앞을 지나가는데 계속 후끈한 열기가 느껴져서, 혹시 에어컨 고장 난 거 아니냐"고 걱정해주시더라고요. 무인매장이다 보니 제가 상주하지 않는 시간이 많은데, 그 틈을 이웃 사장님이 챙겨봐 주신 셈이에요. 솔직히 그 전화 한 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혼자 운영한다고 다 혼자 감당하는 게 아니구나, 새삼 느꼈어요.
바로 다음 날 에어컨 기사님을 불렀어요. 기사님이 실외기부터 확인하더니 압축기 쪽에 문제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냉매가 새는 것도 아니고 아예 압축기 자체가 맛이 간 상태라, 수리비가 어중간하게 나올 바에야 교체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인수한 지 얼마 안 된 장비라 아쉬웠지만, 여름 한복판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답이 없겠다 싶어서 결국 새 제품으로 바꾸기로 했어요.
무인매장이라 더 아찔했던 이유
돌이켜보면 유인 매장이었다면 직원이 실내 온도 변화를 바로 느끼고 대응했을 텐데, 무인매장은 그런 즉각적인 반응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몇 가지를 바꿨습니다.
- 매장 온습도를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센서를 하나 달았어요.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온도를 체크할 수 있으니 훨씬 마음이 놓입니다.
- 여름철엔 하루 한 번은 꼭 현장에 들러서 직접 손으로 바람 온도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 냉장·냉동이 필요 없는 상품이라도 온도에 민감한 건 진열 위치를 에어컨 바람이 잘 닿는 쪽으로 옮겼습니다.
에어컨을 새로 들이면서 비용은 좀 나갔지만, 그날 녹아버린 초콜릿보다 더 큰 손실을 막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어요. 그리고 옆 가게 사장님께는 따로 연락드려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무인매장이라고 해서 정말 혼자인 건 아니더라고요. 이웃 상권에서 서로 눈여겨봐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걸 이번 일로 제대로 배웠습니다.